2002. 10. 4. 20:45
krsg_diary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각본: 대런 아로노프스키
촬영: 매튜 리바티크
음악: 클린트 맨셀
출연: 숀 굴레트, 마크 마골리스, 벤 솅크먼
수입, 배급: 미로비젼
장르: 스릴러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84분
이카루스의 날개
2002.07.12 문일평(영화평론가)
이 영화는 자연의 비밀을 들춰내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신의 권위에 접근하려는 그러한 본능의 필연적인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흑백 리버설 필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명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등 여러 재능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천재 수학자 맥스는 복잡한 주식시장의 흐름 속에서 일련의 질서를 읽어내려는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쏟아지는 숫자들 사이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맥스는 곧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이용하여 월스트리트를 지배하려는 금융회사, 그리고 그가 얻어낸 숫자와 관련된 비밀을 캐내려는 종교 집단에게 쫓기고, 납치를 당한다.
태양을 응시해서는 안 된다. 붉게 타오르는 절대자, 그 자연의 근원은 인간의 눈길과 호기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태양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우리를 눈멀게 한다. 중력을 거부하고 태양 가까이 다가간 이카루스의 밀납으로 된 날개도 사실은 같은 이유로 녹아내렸다.
<파이>에서 주인공 맥스는 태양을 응시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기어코 무시한다. 무질서한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고유한 본능이다. 맥스는 그 본능을 적정한 선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거대한 컴퓨터 유클리드와 함께 '숫자'를 날개 삼아 조물주의 설계도를 훔쳐내기 위해 한없이 날아오른다. 그는 바둑판 위에서, 잉크가 퍼져나가는 물 속에서 프랙탈 도형을 발견하고, 세계는 그러한 패턴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자연을 초월해서 그것의 구조를 펼쳐내려는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그의 삶을 방해한다. 밝은 태양을 응시할수록 눈앞의 현실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통에 시달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원래 그가 캐낸 숫자의 비밀은 현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는 반대로 그러한 숫자의 힘을 알고 있는 금융회사 직원에게 이용당한다. 또한 그 숫자는 천지를 창조한 신의 이름이어서 신비주의 유대교 신도들에게 납치당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자연의 비밀을 들춰내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신의 권위에 접근하려는 그러한 본능의 필연적인 좌절을 그려내고 있다. 금융회사나 종교 집단과 같은 은유적인 설정은 다소 도식적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감독의 사변은 독백이 아닌 방백이 되었다. 흑백 리버설 필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명암, 그리고 영화 속의 어두운 세계를 세련되게 고양시키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등 여러 재능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