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사진과 글에 미쳐 있습니다.
열심히 하다가도 간혹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정말 천재같은 사람들의 사진과 글을 볼 때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정말 천재인가보다.
그런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가지다보면, 길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냥 안되는구나 포기한다든지, 다시 죽어라 노력해본다든지..
보통의 경우는 전자입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손대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밥벌어먹고 살 수 있는 현재의 나의 직업과 관계된 일 정도일까요??
아주 오래 전 기억들을 떠올렸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을 슬쩍 보여주며 감탄하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곤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와~ 이걸 어케 짠거야?"
"머.. 그냥 대충 짰어"
"얼마나 걸린거야?"
"흠.. 하루 이틀 정도? 게임하다 생각날 때 조금씩 했으니 총 다섯시간 정도 될라나"
"와~ 진짜 대단하다!"
구라였습니다. 며칠 밤낮을 짜고 고치고 수없이 손을 봤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엔 마치 천재인양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왜 문득 이 생각이 났을까요?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맘에 안들어 분명 이건 캠코더를 가지고 정지화상을 찍다보니 그런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시를 써보겠다 아무리 깝죽대도 써놓고 보면 스스로도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고.. 그러다보니 걍 취미로 쓰는건데라며 또 위안을 삼고..
그러다 에이 그냥 또 딴 걸 시도해볼까하는 생각들이 무럭무럭 피어날즈음..
중1 생활국어 교과서에 실린 아래 수필을 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수필에서처럼 꼭 글쓰기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애착을 가지고 또는 하고싶어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자책으로 끝나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포기하지않고 즐기며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결실은 맺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글이 제게 힘을 주었듯이, 여러분 중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글 잘 쓰는 천재들의 거짓말은 믿지 마라 / 한승원
한승원- 1939~. 소설가. 현재 조선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전남 장흥 출생. 작품으로는 단편 <미친소리><거미의 시계와 교사들><소설가의 이빨>
1. 글 잘 쓰는 사람들도 거듭 고쳐 쓴다.
옛날에 시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선비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자기를 찾아온 벗이나 후배들에게 새로 쓴 시를 내보이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이거, 간밤에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잠깐 써 본건데, 한번 읽어 보게나"
그 시를 읽고난 그의 벗이나 후배들은 한결같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건 사람이 쓴 게 아니야. 신선이나 귀신이 쓴 것이지"
그만큼 그 선비가 골라 쓴 말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정교한 눈, 또 그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세계의 아름답고 고움은 남달랐던 것이다.
한 후배가 궁금히 여기며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글을 잘 쓰실 수 있습니까? 많은 시간 명상을 하셨죠? 몇번이나 고쳐 쓰고 다듬고 하십니까?"
그말에 선비는 고개를 회회 저으면서 당당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천만에!. 나는 시문을 지으면서 이미 쓴것을 고쳐 쓰거나 그 가운데서 어느 부분을 잘라 내는 등의 다듬는 일은 전혀 해본적이 없어. 나는 처음에 한번 휘갈겨 써놓으면 그것으로 끝이거든. 그러고는 깨끗이 잊어버리지. "
"네? 아하"
후배는 경솔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얼마후 선비가 소변을 보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떴다.그 후배는 뜻밖에도 기막힌 것 하나를 발견하였다. 선비가 깔고 앉았던 방석의 한 귀퉁이 밑에서 뾰조록이 삐어져 나온 희끗한것..
그것은 선비가 시를 쓸때 사용하는 종이였다.
후배는 얼른 방석을 들춰 보았다.
순간, 하늘에 해가 하나 떠오르는 것처럼 눈앞이 한층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배는 이번에야말로 감동어린 목소리로 "아하!"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방석 밑에는 "간밤에 잠깐 썼다"며 선비가 자랑스럽게 내보였던 시의 초고와, 그것을 세번, 네번 새까맣게 고쳐 쓴 종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 잘 짓는다고 소문난 그 선비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천재성을 노골적으로 자랑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2. 아들딸들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
나는 고향 마을에 서재를 새로이 마련하고 책과 살림살이들을 그리로 옮길때 아들딸 셋을 앞에 불러 모았다. 그들은 모두 평생동안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보여줄것이 있다"
아들딸들은 매우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나는 책장의 맨 밑 서랍에서 숨겨놓았던 원고뭉치와 대학생용 공책들을 꺼내 놓았다.
그것들은 내가 젊은 시절에 쓴 원고들이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 나는 그 첫 원고를 대학생용 공책에다 깨알같이 썼다.
그런 다음 그것을 원고지에 옮겨 쓰고, 그 원고지의 것을 또 다른 새 원고지에 고쳐 정리하고. 그것을 또다른 새 원고지에 옮겨 썼다.
그것도 시원치 않으면 새까맣게 뜯어고친 다음, 또 한번 새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그리하여 다섯번째 것을 잡지사에 넘기고는 하였다.
그러니까 책장 밑에 들어있는 그 원고뭉치들은 그러한 나의 흔적들인 셈이다.
지금은 이미 책으로 엮어져 나와있는 것들이지만, 몇 차례나 고쳐 썼던 단편 소설의 원고들, 또 중편소설이나 장편소설의 초고를 비롯하여, 두번 , 세번 고친 원고들..
내가 꺼내놓은 원고뭉치나 공책들은 눌눌하게 색이 바래 있는데다 검은 곰팡이까지 슬어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저것을 난생 처음으로 일주일만에 갈겨 쓴 것입니다" 하고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하는 작가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비춰본다면, 나는 30년동안 소설을 써 온 작가로서 이런 흔적들을 창피스럽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딸들에게 그것을 한장 넘겨보이면서 말했다.
"보아라, 나는 어떤 글이든지, 이렇게 최소한 네댓번씩은 고쳐 쓴 후에 발표했다. 이 곰팡내 나는 원고뭉치들은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말한다면 너희 아버지가 매우 성실한 작가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고, 나쁜 쪽으로 말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작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들딸들은 말을 잃고 있었다.
"그 사이 내 작품들에게 아주 많은 상이 주어졌지. 나는 그것들이 모두 정말로 잘 쓰여졌기 때문에 상이 주어졌다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나의 작가적 태도를 높이 평가하여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딸들은 모두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왜 내가 작가로서 창피할 수도 있는 이 흔적들을 일찍이 없애 버리지 않고 이렇게 너희들 앞에 내놓았는지 그 까닭을 아느냐? "
나는 아들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느라고 한동안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들 눈앞에 드러나 있는 것들은 모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즉,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것들의 뒤쪽에는 은밀하게 숨겨진 피와 땀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거지. 그리고 어떤 일이든 한번 해봤을 때에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쉬이 절망하지 말라는것. 이 세상의 모든 천재는 반드시 성실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3. 절망하여 글을 쓴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
아들 딸들의 눈에 얼핏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말을 이었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절망하면서 쓴다. 작가는 어떤 생각이나 사물을 표현할 때 가장 알맞은 단어를 동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끌어올 수 있는 단어들은 겨우 이정도뿐이구나. 내가 표현해 낼 수 있는 주제라는 것도 기껏 이 정도 뿐이던가? 고작 이만큼의 감동밖에는 줄 수가 없는것인가? 글을 정말로 재미있게 진지하게 아름답게 신비하게 지적으로 쓸 수는 없는걸까?
글을 끝맺고 나서도 나는 이렇게 절망한다. '아아, 내가 삶의 원리나 우주의 뜻에 대해 깨달았다고 믿었던 것도 한낱 이정도에 불과했구나' 하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내던진 채 몇날 며칠을 방황한다. 그러다 문득, '한번 작정하고 나선 자가 이렇게 물러서다니!' 하고는 다시 책상앞으로 돌아와 앉는다. 선배들의 좋은 작품들을 구해서 읽고,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을 훑고, 그것들을 내 삶과 내 작품에 비춰보고 내 삶의 의미들을 찾는다. 도를 닦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나의 어떤 점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 것인지 골똘하게 생각한다."
나는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쳐 쓰기 시작한다. 써두었던 것을 성난 얼굴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전혀 새로운 작품을 쓰듯이 밤을 새워 과감하게 고쳐 쓰는 것이다. 기왕에 한번 시작해 놓은 나의 작품이 이렇게 저렇게 완성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한 문장 한문장씩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기껏 써놓은 어떤 대목을 과감하게 잘라 내 버리고, 부족하다 싶은 이야기는 덧붙이고.."
아들딸들은 냄새나는 원고뭉치들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너희가 내 뜻을 알아들었다면 이것들은 이제 필요없으니 불에 태워버려라"
그러자 큰 아들이 고개를 힘껏 내젓더니 결연하게 말했다.
"아버지 태우지 않겠어요. 이것들은 제가 소중히 보관하겠습니다"
아들딸들은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4. 남 모르게 공부하기, 은밀하게 글 다듬기
학창시절, 나에게는 언제나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는지 사람들이 모두 천재라 일컬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하고 늘 붙어다니며 놀 것 다 놀았는데도, 시험만 치면 일등을 하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 잠시라도 공부를 하기는 커녕, "시험, 그것 조금 잘 보면 뭐하냐?" 하면서 짓궂게 장난만 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저녁 내내 즐겁게 놀다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두시쯤 이었을까?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그 친구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친구의 참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도둑처럼 남몰래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난 뒤에도 그 친구는 쿨쿨 자고 있었다.
학교에 가자고 흔들어 깨우자, "야, 나 30분만 더 잘테니까 깨우지 마라" 하고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곯아 대었다.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주제를 생각하며 내용을 구성하고 또 좋은 표현들을 동원하여 썼다해도 그 글을 처음 그대로 제출하지는 마라. 한번 고치고 또 한번 고치고 또 다시 고치고..
도둑질을 하듯이 은밀하고 세심하게 글을 다듬어야 한다.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쓰지는 않았는지, 앞뒤 문장의 호응 관계는 올바른지, 시간은 맞게 표현되어 있는지, 글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는지..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뗀채, " 나는 이 글을 대번에 쓴거야. 난 한번 쓴것을 절대로 다시 들여다보지 않거든. 한번 쓰기도 지긋지긋한데 왜 두 번 세 번 들여다보니? " 하고 당당하게 거만하게 말하라.
당당하고 거만한 이 말은 여러분들의 천재성을 한껏 뽐내 줄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들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쓴 글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글을 쓴 사람의 천재성은 그 사람의 글을 훨씬 신비롭고 지성적이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테니까.
출처 : 사내 wiki. 울 팀장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