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 ㅣ 임근호 배병철기자] 2003년도 약 50달러에 육박하던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주가가 2006년초 약 5달라 선까지 급락했다. 불과 3년 사이 주가가 10분의 1토막 난 셈이다. 물론 주가하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크리스피 크림의 경우 트랜스지방이 주요 원인이 됐다. 특히 2004년 이후 트랜스지방에 대한 문제점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트랜스지방을 다량 함유한 크리스피 크림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비단 주가 뿐만 아니다. 매장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인 '에스에프게이트(SFGAT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문을 닫은 크리스피 크림 매장만 해도 90여개를 넘는다. 게다가 트랜드의 상징인 뉴욕에 위치한 매장은 겨우 2개점 뿐. 펜스테이션과 어퍼이스트사이드 매장만 문을 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출이 급감, 2005년 매출이 전년도 대비 약 23% 이상 줄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2004년 12월 미국계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들여온지 불과 2년만에 직영점을 14개점으로 늘였다. 이중 서울에 11개점이 집중돼 있고, 일산과 분당 등 수도권에 2개점, 부산에 1개점이 있다. 매출규모도 가히 폭발적이다. 불과 2년 사이 연매출 25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처한 위기와 달리 유독 한국에서만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세계는 지금 '트랜스지방과의 전쟁'
유학생 김태헌(31)씨는 신촌에 위치한 크리스피 크림 매장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풍경 때문이었다. 김씨는 "뉴욕 펜스테이션 매장 앞에서 도넛을 먹지말자고 시위하는 사람들은 봤어도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못봤다"면서 "(미국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시들해진 크리스피 크림이 한국에서 왜 저렇게 인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미국에서 불고 있는 '노 트랜스 팻(No Trans Fat)' 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트랜스지방이 동맥경화, 뇌졸증과 같은 혈관계 질환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것. 김씨는 "트랜스지방의 위해성이 보고된 이후 미국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 등이 나서 트랜스지방을 축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트랜스지방 덩어리로 알려진 크리스피 크림이 이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트랜스지방의 위해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버드 의대 월터 윌레트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트랜스지방으로 매년 3만3000여명의 미국인이 죽고 있다"며 "트랜스지방을 '조용한 암살자(silent killer)'"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영국 의학지 '랜싯'은 "트랜스지방을 하루 5g 이상 섭취하면 심장병 발생 위험이 25% 이상 상승한다"며 "모든 음식물에서 트랜스지방을 없애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크리스피 크림 '트랜스지방 5.1g'
그럼에도 불구 유독 한국에서만 트랜스지방의 위험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 건강의학 전문의 조셉 머코라 박사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음식' 중 하나인 '도넛'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무지한 정도다. 이에 취재팀은 최근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크리스피 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한국식품연구원'(이하 한식연)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지난달 21일 본지로 날라온 '시험 성적서(Certificate)'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시험 성적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크리스피 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의 열량은 412kcal(100g 기준)다. 도넛 1개의 중량이 49g임을 고려할 때 2개만 먹으면 밥 1공기(300kcal)를 훌쩍 넘어선다. 비만의 주범이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트랜스지방. 100g당 무려 5.1g이 들어있다. 포화지방은 6.5g이다. 게다가 당조성은 17.3g. 그 중에서 수크로스(sucrose·자당)가 무려 13.3g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식연'의 하재호 박사는 "전반적으로 볼 때 영양 밸런스에 상당히 의문이 가는 식품이다"면서 "도넛 2개에 트랜스지방 5.1g, 설탕 13.3g이 들어 있다는 것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하박사는 이어 "세계적인 추세가 트랜스지방을 축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트랜스지방을 2~3g(2000kcal 기준) 이상 섭취하지 말라고 권고 중"이라며 "도넛 2개에 트랜스지방이 5.1g이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도넛 2개만 먹어도 '심장병 확률 25% 증가'
트랜스지방 5.1g. 도대체 얼마나 치명적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루에 트랜스지방을 5g 이상 섭취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 발병률이 25% 이상 높다. 영국판 '타임'지의 보도를 보면 더 끔찍하다. 신문에 따르면 해마다 2만여명 이상의 영국인이 트랜스지방과 연관된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하재호 박사는 "트랜스지방은 불포화지방임에도 불구 체온에서 고체상태로 있다"며 "체내에 축적되면 혈관계통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트랜스지방이 담배와 마찬가지로 해롭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 미국의 심장협회는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지방으로 인한 심장계통 질환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트랜스지방은 흡연과 비교될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 목동 병원 심장내과 권기환 교수는 "동맥경화증을 악화시키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증가시키고, 반면 동맥경화증 예방을 하는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감소시킨다"며 트랜스지방을 동맥이 좁아지는 협착증상의 원인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트랜스지방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파악, 식품에 트랜스지방 표시를 의무화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실례로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의 지시로 2006년 1월부터, 캐나다 정부는 2005년 말부터 모든 가공식품과 패스트 푸드에 트랜스지방의 함유량을 표시토록 했다. 덴마크는 2004년 1월 부터 가공식품에 함유된 지방 중 트랜스지방 함량이 2%인 경우 유통을 아예 금지 시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는 2007년 12월부터 트랜스지방 표시 의무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 수입사 롯데쇼핑 '소 잃고 외양간 고치나'
트랜스지방을 '조용한 암살자'라 부른다. 혈관 벽에 차곡차곡 쌓여 소리소문 없이 카운트 펀치를 날리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트랜스지방 표시 의무제를 시행한다 한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스피 크림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어 수많은 트랜스지방을 몸에 쌓아두고 있다. 어디 트랜스지방 뿐인가. 도넛을 2개씩 먹을 때마다 당 17g이 함께 몸 속에 녹아 들어왔다.
미연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주)롯데쇼핑이 미국에서 크리스피 크림을 들여왔을 때가 2004년. 당시 미국에서는 트랜스지방의 문제점이 한창 이슈였다. 그럼에도 불구 롯데쇼핑은 트랜스지방의 '트'자도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도넛 팔기에만 열중했다. 뿐만 아니다. 매장 로고에 빨간 네온사인이 켜지면 도넛을 1개씩 무료로 나눠주며 고객의 입맛을 '단맛'으로 길들였다.
롯데쇼핑 마케팅팀 이지헌 팀장은 "트랜스지방의 문제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팀장은 "2004년 크리스피 크림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지방의 문제점을 인식했다"면서 "때문에 트랜스지방을 제로(0)로 낮추는 기름을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했다. 내년부터 트랜스지방이 없는 도넛이 선보일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판매시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왜 표시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엉뚱한 답변을 늘어 놓았다. 이팀장은 "제조사는 성분표시를 해야한다. 하지만 크리스피 크림은 빵을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라 완성품을 파는 제빵사이기 때문에 표시의무가 없다"고 변명했다. 단, 칼로리 등의 기초성분은 이미 매장에 표기해 판매중이라고. 그러나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매장에 적힌 성분표시는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제품 진열대에 깨알같은 글씨로 성분을 표기해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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